우징: 섬 안의 섬 (월간미술 9월호 리뷰)

강민지 | 경기도미술관학예연구사

분쟁과 기후위기의 시대에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자연에 주목하여 생태계적 가치에서 지구회복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있다. 최근 5년동안 동식물과 환경을 주제로 한 전시와 프로그램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는데,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유일한 지구의 소중함 때문이다.

올 여름,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에서 물에 관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하도리에 있는 요이의 아티스트런스페이스 '언러닝 스페이스'가 주최하는 (우징: 섬 안의 섬>이 그것이다. 우징(15)은 비가 올 징조'라는 의미로, 생활용수가 귀했던 제주에서 오랫동안 길한 조짐으로 여겨졌는데, 전시에서는 '흐르고 스며드는(oozing) 물의 속성을 그 의미에 더했다. 루킴, 요이, 유은, 정혜정, 제인 진 카이젠, 조은지 총 6명의 참여작가는 물의 다양한 서사를 전개하며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요이의 <내가 헤엄치는 이유>는 2년 전 제주로 이사한 작가가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사랑하는 Y에게 쓴 편지 형식의 영상이다. 작품 제목은 1976년 발간된 조앤 디디온의 Why I Write에서 차용했다. 작가는 도시의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해녀학교에서 물질을 배우고 공동체 생활을 하며 "헤엄치는 법과 숨 쉬는 법, 말하는 법을 배웠다"고 적는다. 도시 속도의 관성에서 벗어나 제주의 물결 흐름에 몸을 맡기며 헤엄치는 방법을 배우고, 몸의 균형과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된 과정을 잔잔히 묘사한다. 조앤 디디온이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글을 쓴다면, 작가는 이웃 해녀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며 나와 나를 둘러싼 외부에 대해 천천히 알아간다. 존재를 고립시키는 동시에 연결하는 물, 그것은 나와 '사랑하는 Y'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 전체를 내포하고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문어는 약 5억 년 전부터 인간과 거의 정반대의 진화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조은지의 영상 문어적 황홀경> (2019)은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그 아이의 문어 형제가 하나씩 생긴다는 인도네시아의 쌍둥이 문어 신화를 모티프로 한다. 작가는 자바섬의 해변과 바닷속에서 요가와 명상, 변성 의식 등 퍼포먼스를 하며, 한날한시에 나와 함께 탄생했을 문어 형제의 감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상상한다. 인간과 문어의 혼종이 가져다주는 낯선 시공간의 이미지는 이질적인 종의 연결과 교감, 다중자아의 가능성, 새로운 관점으로 인간중심주의 세계관에 대안을 제안한다.

부유하는 듯한 새파란 허구의 소우주를 담은 3D 그래픽 애니메이션 영상은 정혜정의 <액체인간 (2021),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 어땠어> (2022)이다. 5분 남짓한 각각의 영상은 투병과 출산이라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와 함께 살아 숨 쉬는 몸의 세포를 더듬고, 우리의 몸과 탯줄로 연결되었던 엄마라는 존재에게 내가 태어났을 때'를 질문하며 멀어진 기억을 재구성한다. 인간과 비인간이 상호 의존적으로 구성된 하이브리드로서 브뤼노 라투르가 언급한 '집합체'의 개념처럼, 정혜정에게 인체는 독립적이고 순수한 단일체가 아닌, 나와 다른 존재가 공존하는 터와 기반으로 인식된다. 이처럼 작가는 물을 매개로 세대 간, 내부와 외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대화를 시도한다.

이전 작품들에서 신체가 세계를 감각하는 매개체로서 물을 다루었다면, 제인 진 카이젠에게는 물이 역사적 시공간을 이어주는 연결통로의 역할을 한다. 제주는 어떤 사람들에겐 생활의 근거지이자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지일 수 있지만, 100년 전에는 일제 식민지 강탈의 아픈 역사를 겪은 곳이었다. 영상 (Of the Sea) (2013) 속 작가는 1931년 해녀들이 일본의 수탈에 맞서 하도리 해변에서 행진한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며, 해녀들의 생명줄'로 불리는 테왁을 착용하고, 할아버지가 집필한 「제주해녀항일투쟁실록」을 들고 검고 억센 현무암 해안을 걷는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땅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몰두하는 작가의 행동은 마치 장소에 술은 기억과 표지를 되살리는 신성한 의식처럼 보인다. 하도리 해변에서 작가는 세대, 문화, 국가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 잊힌 몸짓과 목소리, 풍경을 되살린다.

그런가 하면, 루킴의 <눈, 코, 입, 귀, 이마, 턱, 광대뼈, 눈썹)(2021~2023)은 마포대교 아래에서 투신자들의 몸을 집어삼켰을 물들의 대화를 대본 형식으로 들려준다. 이는 마포대교에 '자살대교'라는 오명을 씌운 삼성생명의 '생명의 다리'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마닐라 삼 밧줄에 매달린 물들의 대화기록은, 본래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던 물이 인간들의 오해로 죽음의 가해자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제일기획, 삼성, 서울시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좌우가 반전된 거울 이미지로 제시된다. 대규모 댐과 정수시설 건설로 물을 다스리게 된 현대인과 섬사람들에게 물의 가치는 점차 약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전시에서는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물위 유동성, 연결성, 투과성에 주목하여 다양한 공생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여러 다른 객체들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통해, 비로소 전시의 부제 '섬 안의 섬'은 고립된 개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전시 기간에는 퍼포먼스, 워크숍, 토크 등 다양한 연구와 지역 공동체와의 소통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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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드는(Oozing)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