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징: 섬 안의 섬 Oozing 雨徵: Islands in Islands
제주 동쪽 바닷가 옆 작은 마을 하도리에 위치한 예술 공간 언러닝스페이스는 전시, 퍼포먼스, 워크숍, 토크 프로그램 등 다양한 행사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우징: 섬 안의 섬 Oozing 雨徵: Islands in Islands>을 7월 15일부터 9월 30일까지 개최한다.
제주를 이루는 다공성의 화산석은 폭우가 쏟아져도 이를 모두 빠르게 지하로 투과시킨다. 그래서 예로부터 제주에는 물이 귀했고, 우징(雨徵, 비가 올 징조)은 길한 징조였다. 바닷물은 아무리 많아도 식수나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없었지만, 제주를 둘러싼 심해는 오래도록 제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되어왔다. 해녀들은 자신이 숨 쉴 수 있는 시간 동안만 잠수해서 바다와 대기가 허락하는 만큼의 해산물을 수확한다. 그러한 균형 감각과 생태계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습관은 근대화된 사회에서 아주 드물게 유지되는 것들이다.
물론 제주에서 물의 의미도 근대화의 길을 걸으면서 빠르게 변화했다. 대규모 댐과 정수 시설을 건설하고 물을 다스리게 되면서 현대인은 자연 상태의 물에 대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불쾌하며 비위생적인 젖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 물질적인 구조의 건설은 여타 다른 생명들과 뒤섞여 존재하는 상태로부터 자신을 분리해 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작동하는 상태로 스스로를 이해하고 재조립하는 정신적 구조의 성립과 서로를 견인했다. 수도꼭지에서 깨끗한 물을 상시로 공급받고 하수 시설로 더러운 물을 흘려보내는 대부분 주민과 여행객들에게 이제 비는 귀찮고 실망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제주에는 이와 같은 근대화된 세계에 적응한 사람들, 여전히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 따라 살고 있는 사람들, 대안적 삶을 찾아온 사람들, 혹은 오히려 국제적인 기업이나 학교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여러 공동체가 혼재되어 있다. 다양한 경로로 정착한 사람들이 형성한 공동체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는 경쟁과 휴식, 보호와 개발, 이주와 정착, 삶과 죽음에 대한 제각기 다른 신념들로 인해 더욱 두드러진다. 섬 안의 섬처럼 존재하는 각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과 목적으로 하여 만나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다른 인식 속에서 머무른다.
그러나 우리는 제주의 돌과 물에서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88만 년 전 시작된 화산 활동에서 분출한 용암이 바다와 만나 형성된 제주의 지층은 아직 굳지 않고 물을 머금고 있으며, 해안 곳곳에서 용천수를 내뿜는다. 돌은 물을 투과시키지만, 동시에 이를 자연적으로 정화하여 분출한다. 아스트리다 네이마니스(Astrida Neimanis)에 따르면, 물은 우리가 잉태되고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며 우리를 다른 종과 연결하는 물질이다. 우리 종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은 물에서 비롯하였으며, 우리 신체는 점막을 통해 수많은 다른 유기체들과 공생하며 지금도 소멸하는 동시에 생성되는 중이다. 우리가 흡수하고 배설하는 물을 지구의 다른 유기체들도 흡수하고 배설하며, 우리는 같은 양수 안에서 숨 쉬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제주의 돌과 물에서 종과 세대, 각기 다른 세계관, 여러 공동체를 관통하는 만남과 연결을 배우려 한다. <우징: 섬 안의 섬 Oozing 雨徵: Islands in Islands>의 다장르 프로그램과 전시는 섬-공동체를 교차하고 ‘스며 나오며(oozing),’ 그로부터 발생하는 혼종성을 지향한다. 자신 몸속에 살아 숨 쉬는 여러 유기체의 존재를 인식하고, 시각이 아닌 촉각이나 청각을 이용해서 주변을 감각하고, 나아가 다른 종의 감각에서 세상을 인지하도록 유도한다.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주장하거나 우리 삶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주를 제시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고, 낯선 환경과 세대 간의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만남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세계에 대한 다른 이해에 노출되는 과정을 통해 혼종적인 상태, 젖은 상태의 자신을 서서히 발견하는 길목을 트며, 나와 너를 가르는 경계 안-사이에 새로운 통로를 내려 한다.
*Astrida Neimanis, Bodies of Water (London: Bloomsbury, 2017)
기획: 언러닝스페이스 대표 요이, 루킴, 유은, 이은수
글: 이은수